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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uri's Blog
under the SEA

Carpe diem - 명작들과의 뒤늦은 만남에 대하여

분류없음 2009/05/30 03:39 by meguri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중 문화 컨텐츠를 얻는 일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 더이상 국경이나 시간적 차이는 컨텐츠를 구하는데 장벽이 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박명수 데뷔앨범 정도로 희귀음반 취급을 받을 세네갈 가수 Youssou N'Dour의 노래도 인터넷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편리함은 예전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거의 천지개벽에 가깝다. 학창시절에는 라디오에서 처음 듣는 좋은 노래가 나오면, DJ가 곡명을 알려주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간혹 노래 뒤에 광고가 이어지면서, 곡명을 알 수 없게 될 때의 답답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요즘같으면 방송국 홈페이지 선곡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가사 몇 마디만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노래의 정체를 밝힐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당시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두고두고 듣기 위해, 며칠이고 라디오 앞에서 녹음 버튼을 누를 준비를 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이야, 몇 번의 클릭으로 mp3 다운로드를 마칠 수 있지만...

TV만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종류의 안타까운 기억이 많다. 어려서부터 프라모델을 좋아했던 나는 건담스페이스 간담 V 를 비롯한 꽤 많은 수의 로보트를 만들며 자랐다. 그러나, 정작 그 로봇들의 원작 애니메이션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중 극히 일부의 아동용만 수입 가능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동네 문방구마다 수입도 되지 않는 애니메이션의 해설서가 가득했다는 사실이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라면 다들 기억하고 있을 그 책들은 바로 다이나믹 콩콩 대백과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애니메이션은 20여년전 현충일(?)에 KBS에서 보여준 '지옥의 외인부대'였다. 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기를 모는 사나이들의 뜨거운 모습은 당시 같은 반 남자아이들 전부를 파일럿 지망생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주인공이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동료들이 기다리는 마지막 전장으로 향하는 순간, 그야말로 칼로 무 썰듯, 만화가 끝나버리는 바람에, 다음 해 현충일이 2부가 방영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 블로그에 따르면, 일본어 자막이 보이는 엔딩크레딧이 통째로 짤려나가는 바람에, 미완결처럼 보인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나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위의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게 됐다. 스페이스 간담 V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어설픈 표절이었고, 지옥의 외인부대의 원제는 Area 88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에 바랜듯한 화면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작품들 자체의 전반적인 퀄리티는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비로소 원작을 봤다는 감격보다는 허탈함이 더 컸다. 당시 나를 비롯한 한국 어린이들이 처해있던 척박한 문화적 환경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원작대신 흑백 인쇄된 조잡한 해설서를 보던 한국 어린이와, 총천연색(!) 컬러 애니메이션으로 즐긴 일본 어린이들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특히, 저 애니메이션들이 세상에 첫선을 보일 당시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를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나는, 아마도, 반공독후감, 포스터, 표어를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냉전 국가의 어린이' 역할을 다 하느라, 로봇과 메카닉에 관한 꿈을 키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어 공부를 핑계로 수시로 예전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다. 그리고, 맘에 드는 작품을 발견할 때마다, 드라마 방영 당시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당시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억의 부재는 또다시 '놓쳤다'는 느낌을 준다.


요새 자주 다시 보는 작품은 NTV의 2003년작 '수박'이다. 여자들이 모여사는 하숙집을 배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듯한 삶의 철학을 툭툭 내던지는 드라마다.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속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평범하지 않은 에피소드들. 주인공들은 약간은 엉뚱한 그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담담하게 인생에 대한 깨우침을 주고 받는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충격적인 결말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은 일상에 대한 통찰력작은 행복이 넘치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2003년 여름 '수박'이 방영될 때,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매일 밤 술을 퍼먹고 있었다. 삶의 대한 성찰이나 일상에 대한 소중함보다는, 회사내의 권력 구도 파악부서 배치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직장과 주변 사람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고, 어느새 지금은 세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당시 그 드라마를 봤더라면, 지금쯤 나의 삶은 조금 심심하더라도 더 즐겁고 편안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물론, 뒤늦게라도 이런 작품들을 만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좀더 먼저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변함이 없지만, 평생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래도, 더 이상은 이런 아쉬움을 느끼고 싶지 않다. 분명히 지금도 어디선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것들이 '놓친 작품'이 되기 전에 만나고 싶다. 시간을 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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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엉소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 일드 보고싶네요....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흔치않은데 ^-^

    2009/05/30 07:15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05/30 10:11
    • meguri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저기 잘 찾아보면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곳이 좀 있죠.ㅎㅎ

      현재 ipod용으로 인코딩된 파일을 가지고 있으니,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

      2009/05/30 21:14
  3. 싱주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갑자기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
    일본영화 Detroit Metal City (DMC라고...) 이미 보셨으면 찌찌뽕

    2009/05/3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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